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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or Things : 벨라 벡스터, 현실구조와의 충돌, 시각적 유희

by yebongmibong 2025. 6. 16.

《Poor Things (2023)》는 기존 영화 문법을 완전히 벗어난 독창적인 작품이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특유의 기괴하고 우화적인 스타일 속에서, 관객은 '벨라 백스터'라는 한 여성의 기이한 성장 서사를 따라가며 근대 사회의 성별 규범, 자유, 지성, 쾌락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 마치 ‘프랑켄슈타인’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섞은 듯한 이 이야기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철학적 성찰과 유머, 그리고 비주류적 미장센이 어우러지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엠마 스톤은 이 영화에서 과감하고 전위적인 연기를 펼치며 자신의 커리어에 있어 또 하나의 전환점을 만들어냈다. 단순히 괴상한 영화가 아니라, 시대의 억압과 여성 해방을 과감하게 은유한 이 작품은 2023년 가장 도발적이면서도 예술적인 영화 중 하나로 꼽힌다.

🧬 벨라 백스터: 탄생과 성장의 은유

주인공 벨라는 죽은 여성의 몸에 어린아이의 두뇌를 이식해 탄생한 존재다. 정신적으로 완전히 백지상태였던 그녀는 성장의 과정을 신체와 감정, 이성, 사회적 경험을 통해 하나하나 겪으며 점점 복잡한 자아를 형성한다. 그녀는 태어남과 동시에 기존의 여성성을 거부하고, 기존 사회의 규범과 제약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로 출발한다. 이 설정은 벨라를 단순한 캐릭터가 아닌 철학적 상징으로 만들며, 관객은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통해 "인간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벨라의 첫 성적 경험은 영화에서 중요한 전환점이다. 그녀는 그것을 죄책감이나 수치심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탐구한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여성이 자신의 몸과 쾌락을 온전히 소유할 권리에 대해 대담하게 접근한다. 사회가 강요해 온 순결, 절제, 수동성 같은 전통적 여성상은 벨라의 행보 속에서 철저히 해체된다.

그녀의 성장은 동시에 지적인 해방과 연결된다. 처음에는 단순하고 유아적인 말투를 쓰던 벨라는 점차 철학적 언어를 구사하며,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존재로 변모한다. 그 변화의 과정은 인류의 진화 과정처럼 은유적으로 묘사되며, 관객은 이 극단적인 서사 속에서 현실의 억압된 목소리를 직시하게 된다.

🌍 세계를 여행하며 부딪힌 현실의 구조

벨라는 한 남성과 함께 세계를 여행하며 다양한 문명과 계급, 문화 속에서 충돌한다. 이는 단순한 모험담이 아닌, 그녀가 기존 세계의 위선을 하나하나 깨닫고 붕괴시키는 여정이다. 특히 남성 중심의 시선과 구조를 그녀의 낯섦과 정면 충돌시키며, ‘당연한 것들’에 대해 다시금 의문을 품게 만든다. 벨라의 행동은 종종 당황스럽고 무례하게 보일 수 있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우리가 너무 익숙해져 무감각해진 구조적 불평등이 숨어 있다.

여행을 거듭할수록 벨라는 자신을 통제하려는 남성들과 마주하게 된다. 그녀는 연인의 질투, 남성의 보호욕, 사회적 제약에 끊임없이 저항하고, 스스로를 하나의 주체로 정의하려 한다. 이는 단순한 페미니즘 선언을 넘어, 자아 탐색과 자유에 대한 욕망으로 읽힌다.

특히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벨라는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넘어, 인간으로서 온전히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되묻는다. 그녀는 스스로 선택한 삶을 위해 과거의 보호자이자 창조자인 ‘갓윈 박사’에게서도 독립하려 한다. 이는 마치 신에게서 독립하려는 인간의 서사처럼 다가오며, 영화는 철학적 깊이를 극대화한다.

🎨 미장센과 연기: 시각적 유희와 감정의 충돌

《Poor Things》는 시각적으로도 독특한 미장센을 자랑한다. 곡선적인 건축물, 과장된 색채, 19세기와 미래적 분위기가 공존하는 공간은 마치 초현실주의 회화 속 세상처럼 다가온다. 이는 벨라라는 존재의 ‘이질감’을 극대화하면서도, 영화의 우화적 성격을 더욱 강하게 부각시킨다. 무엇보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유머와 잔혹함, 아름다움과 기괴함의 공존은 시각적 쾌감과 불편함을 동시에 안긴다.

엠마 스톤의 연기는 이 영화를 명작으로 만든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그녀는 전신을 활용한 연기로 벨라의 성장, 혼란, 분노, 욕망을 완벽하게 표현해냈고, 감정적으로도 매우 복잡한 내면을 설득력 있게 전달했다. 벨라의 행동은 때론 낯설고 충격적이지만, 그 이면에 존재하는 순수함과 직관은 관객에게 감정적 울림을 준다.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이 기이한 이야기를 통해 영화가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는 대중적이지 않은 소재와 형식을 가지고도, 폭넓은 공감과 비판을 동시에 이끌어냈고, ‘정상’이라는 단어 자체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Poor Things》는 단지 기이한 영화가 아닌, 시대를 반영하는 철학적 텍스트가 되었다.

🧾 결론

《Poor Things》는 한 여성의 기이한 성장기를 통해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여겼던 사회적 관념, 성 역할, 자유, 감정, 쾌락에 대해 통렬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이는 단지 이상한 영화가 아니라, 시각적·심리적·사회적 경계를 무너뜨리는 ‘해방의 우화’다. 엠마 스톤은 감히 그 누구도 흉내 내기 힘든 역할을 완벽히 소화했고, 그녀의 연기는 벨라 백스터를 영원히 기억에 남게 만든다.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다시 한 번 관습에 도전했고, 이번에는 그 도전이 보다 유쾌하고 감성적으로 다가왔다. 《Poor Things》는 여성 중심 서사의 새 지평을 열었을 뿐 아니라, 영화라는 매체가 얼마나 실험적이고 철학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 예라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아는 자유는 진짜 자유인가?"
그리고 그 물음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