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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성탈출:새로운 시대 - 시저 이후의 세계, 인간과 유인원의 입장이 바뀐 진화의 아이러니, 기술의 진보와 감성의 균형

by yebongmibong 2025. 6. 7.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SF 프랜차이즈 **《혹성탈출》**이 또 한 번의 진화를 시도한다. 2024년 개봉한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Kingdom of the Planet of the Apes)》**는 2017년 《혹성탈출: 종의 전쟁》 이후 약 7년 만에 공개되는 신작으로, 전작들과는 결을 달리 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주인공, 새로운 시선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시저의 전설 이후 세상을 배경으로 하며, 인간과 유인원의 힘의 균형이 무너진 세계 속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그리고 있다.

이번 영화는 시리즈의 정체성이었던 철학적 질문과 묵직한 메시지, 그리고 스펙터클한 시각적 연출을 모두 계승하면서도, 한층 진화한 스토리텔링으로 무장했다. 전작의 팬들은 물론, 새로운 관객층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인 요소가 가득한 이 작품은 과연 SF 장르의 명맥을 어떻게 이어가고 있을까? 지금부터 자세히 들여다보자.


1. 시저 이후의 세계, 무너진 질서의 시작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는 전작의 주인공이자 상징이었던 ‘시저’의 죽음 이후 수백 년이 지난 시점을 배경으로 한다. 이제는 유인원이 문명을 이루고 지배하는 사회가 형성되었고, 인간은 퇴보한 존재로 변해버렸다. 중심 인물인 ‘노아’는 젊고 순수한 침팬지로,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인간 여성 ‘마이’**와 조우하게 되며 그의 가치관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노아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단순한 종족 간의 갈등이 아니다. 유인원 사회 내부의 계급, 권력, 탐욕까지 복합적으로 얽힌 이 세계는 시저가 꿈꾸었던 이상향과는 거리가 멀다. 특히 유인원 지배자 ‘프로시무스’는 시저의 이름을 왜곡해 제국주의적 질서를 강화하고 있으며, 이는 **‘권력은 어떻게 부패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시저의 유산이 어떤 방식으로 왜곡되었는지 살펴보는 과정은, 단순한 모험 그 이상의 무게감을 부여한다.


2. 인간과 유인원의 입장이 바뀐 진화의 아이러니

이번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기존 시리즈와 인간-유인원의 구도를 전면적으로 뒤집었다는 점이다. 초창기 혹성탈출 시리즈에서는 인간 중심의 관점에서 ‘지능을 가진 유인원’이 위협으로 다가왔지만, 이제는 유인원 사회의 시각에서 말을 하지 못하는 인간이 등장하며, 시선이 완전히 반전된다. 이는 관객에게 진화의 정의, 문명의 주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특히 마이(인간 여성 캐릭터)의 존재는 노아를 통해 인간성에 대한 동정을 유도하고, 동시에 유인원 사회 내부의 위선을 드러내는 장치로 작용한다. ‘문명화된 유인원’과 ‘야만적인 인간’이라는 이분법은 점차 무너지고, 관객은 어느 한 편을 쉽게 선택할 수 없는 도덕적 회색지대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복합적인 구조는 이번 시리즈가 단순한 액션 블록버스터가 아닌, 철학적 서사를 담은 SF 대서사시임을 증명한다.


3. 기술의 진보와 감성의 균형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는 최첨단 CG 기술과 모션 캡처 연기를 통해 유인원의 감정과 동작을 실감 나게 그려낸다. 특히 ‘노아’ 역할을 맡은 **오웬 티그(Owen Teague)**의 모션 캡처 연기는 유인원임에도 불구하고 인간 이상의 감정선을 표현해 내며 몰입감을 극대화시킨다. 각본과 연출을 맡은 웨스 볼(Wes Ball)은 《메이즈 러너》 시리즈로 이미 탄탄한 연출력을 인정받았으며, 이번 작품에서도 감성과 스케일의 조화를 성공적으로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전 시리즈에서 인상적이었던 자연 배경, 폐허가 된 인류 문명, 그리고 유인원의 도시 등은 이번 작품에서도 강렬하게 재현된다. 특히 대규모 액션 장면보다는 개인적인 감정선과 내면의 갈등에 초점을 맞춘 연출이 돋보이며,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캐릭터와 보다 깊은 정서적 연결을 가능하게 만든다. 시각적 쾌감과 서사적 깊이가 균형 있게 어우러진 점이 이번 작품의 가장 큰 강점이라 할 수 있다.


결론: 혹성탈출, 다시 질문을 던지다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는 단순한 후속작이 아니다. 이는 프랜차이즈의 정체성을 이어가면서도 새로운 시선을 부여한, 정교하고 깊이 있는 리부트에 가깝다. 시저의 유산 이후의 세계를 통해 문명과 야만, 진화와 퇴보, 권력과 자유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다시금 제기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단순한 오락 영화를 넘어서는 가치를 지닌다.

특히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와 세련된 연출, 그리고 몰입도 높은 캐릭터 구성이 어우러지면서,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는 시리즈의 새로운 전성기를 예고하고 있다. 인간과 유인원의 입장이 바뀐 이 세계에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진화란 무엇인가? 문명이란 누구의 것인가? 이 작품은 그 답을 관객 각자의 마음에 맡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혹성탈출》 시리즈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다.